<1살 때 혈우병 진단받아>

안녕하십니까. 코헴지를 통해 처음 인사드립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지난 30년 동안 혈우병에 대해

무심했다면 무심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제 몸에 소홀했는데, 이렇게 환우 여러분들께 글을 쓰게 되어서

조금은 쑥스럽습니다.

제가 혈우병을 진단받은 것은 1살 때였습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이지요. 부모님 말씀에 따르면

제가 1살이 되던 해에 보행기를 타고 놀던 중 바닥에 떨어진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 얼굴 전체에 출혈이 났고

눈 주변은 심하게 부어올랐다고 합니다.

저희 부모님과 할머니는 너무 놀라서 저를 들쳐 업고 큰 병원이란 병원들은 다 돌아다니셨다고 합니다.

사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 경남 거제도에 살고 있었는데, 부모님과 할머니는 저를 업고 거제도에서 마산으로,

마산에서 부산으로 달려가셨습니다.

하지만 간 병원마다 병명을 몰라 출혈을 멈출 수 없었고, 부모님께서는 무작정 비행기표를 끊어

서울로 올라오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한 의사선생님을 뵙게 되었는데,

그분께서 혈우병임을 짐작하시고는 연대 세브란스병원에 가라고 하셨답니다.

그렇게 저는 혈우병을 진단받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는 제가 약해지지 않도록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많은 투자를 하시면서 교육하셨습니다.

특히 아버지께서는 과잉보호보다는 항상 뛰어놀게끔 하셨는데, 그로 인해 저도 자연스럽게 운동을 좋아하게

되어서 학교 농구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조금 더 몸을 아낄 걸.. 이라는 후회도 들지만,

그때의 삶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입니다.

<첫 수술... 충분한 확신과 여유가 필요해>

20살이 되어서 발목이 아프기 시작했는데, 어느 정형외과에 가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재단 물리치료실 권세진 선생님의 권유로 정병원 유명철 원장님께 진료를 받고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첫 수술이라 그런지 긴장이 많이 되었습니다. 아침 8시에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6시간이 지나서야 마취에서

풀려 일어났습니다. 저는 관절경이 아닌 조직을 열어 절개하는 방식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약 6주간 쉼터(코헴의집)에 머물며 재활했습니다. 재활 초기에는 그저 발을 까딱까딱 하는 정도였는데

1달 정도 돼서 목발을 짚었고, 6주 때는 사이클을 타며 근력운동을 했습니다. 사실 조금 더 집중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회사 여건상 현재는 잠시 멈춘 상태입니다.

현재는 목발을 짚고 있지만 이전과는 달리 출혈이나 통증은 많이 줄었습니다. 수술을 받으면 확실히 전보다는

좋아진다는 게 수술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재활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

수술 후 불안감, 예민해지는 것 등은 단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수술에 대한 확신과 충분한 여유가

주어졌을 때 수술을 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혈우병의 재활은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빠른 완쾌를 위해서는 꾸준한 재활운동이

필요한데, 혈우병의 경우 너무 심할 경우 출혈이라는 독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서 간단한 사이클과

온찜질, 등척성 운동 등을 하고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운동이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지만 콕 집어서 두 분께 감사함을 표하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누구보다 많이 저를 지켜봐주시고 진심으로 걱정해주셨던 재단 물리치료실의 권세진, 김종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환우들을 일이 아닌 슈바이처 같은 마음으로 대해주시는 두 분께 항상 감사와 존경을 담고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이며, 이다음에 저도 로또나 슈퍼볼 같은 행운을 잡게 된다면 꼭 기부하여

혈우병 환우들을 위한, 더 좋은 환경을 만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