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 갔다. 자연의 순환에 따라 이어 먼 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저만치서 종달새도 솟아 오르는

계절이 왔다. 이 여름이란 계절에는 태양은 이글거리고 대기는 뜨겁고 습도는 높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나무들은 제 각기 다른, 그토록 수많은 초록으로 빛날 것이고 식물들은 육감적인 줄기를

살찌우며 뻗어 나갈 것이다.

푸르름의 초입에 쌍둥이 형제중 한 분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재단의 이곳 저곳에서 안면이

있었고, 항상 삶의 긍정성에 동의 했던지라 가슴이 내려 앉았다. 다음날 동생의 사고임을 알고

형과 통화중에 "큰 욕심없이 주어진 몸으로 다리를 대체하는 오토바이를 수단으로 생계를 꾸리는데

..." 하고  말하는 목소리에서는 물기가 묻어 났다. 뭔가 먹먹하고 아릿 하다.

오늘 병문안을 갔다. 전날 병상에 누워서 양손으로 V자를 그리며 얼굴에는 엷은 햇살이 드리운

사진을 문자로 보내왔다. 그래서 "뭐 잘한거라고 브이자를 하고 사진 찍어요.^^ 낼 봐요.ㅋㅋ"

했더니 "걱정말라는 작가컨셉"이란다. 다시 "우~하하^^ 밝아서 좋네요" 했다. 만나서 신변잡기등

여러 이야기를 했다. 행복은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 했는데

수술후 과정을 이겨내고 굳건이 일어서리라 믿는다.

조수호,진원 형제를 보면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신은 왜 노아의 홍수를 일으키고 나서

무지개로 자신의 행위를 반성했을까. 다시는 물로 세상을 휩쓸어 버리지 않겠다는 무지개를.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 설레니,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다 자란 오늘에도 매한가지,

쉰 예순에도 그러지 못하면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무지개>의

한 부분이다. "와, 무지개다!" 동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어른이 아닐까 해서 일 것 이다. 

이 생각은 돌아오는 길, 동서경희대 병원 가로변 숲길 벤치에서도 하게 되는데 여러가지 중첩된 생각이다.

요즘 한달여세 작업장및 환우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것은 언어의 "의미는 곧 오해"(라캉)라는 것 이다.

말의 의미를 규정하는 건 '내'가 아니라 타인들이다. 내가 '대화'라고 의도하고 말했든 상관없이, 다른 이들이

그 말을 '협박'이라고 해석했다면, 그 말의 의미는 협박으로 규정된다.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뜻'을 내뱉지만 말의 본뜻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말과 언어의 '의미'는 주관적인 '의도'가 아니다. 내 머릿속의 의도는 오직 나와 신만이 알 것이다. 내가 무슨

의도를 갖고 말을 하고 글을 쓰든 그것들이 내 입과 손에서 떠나는 순간, 그 의미를 결정하는 건 내가 아니라

내 말과 글을 듣고 읽는 타자이다. 근래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진리를 안다면 그 순간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무모하고 용감하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땐 우리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다, 라고 나는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신음 소리가 있는데 침묵이 우리들을 짓눌렸을 것이었다. 침묵이 우리를 짓눌렀던 이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어서가 아니라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구조적인 문제로 물음표로 남겨놓아야 할 듯 하다.

생각을 확장하면 2013년 재단 캐치프레이즈가 'All Together'이다. 거칠게 요약하면 고단한 먼 길은 '여럿이

함께'가야 한다 정도 일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기 위해서는 차이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승인하는 것

이상이 어디 있을까. 표어가 곧 말이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행동이 곧 성과로 이어지는 것 또한

아니다. 환우단체에는 희망이 정책이 아니듯, 증오나 비난도 정책이 아님을 덧붙이고 싶다. 상대의 처지를

존중해야 정책의 공간이 열린다. '혼자 꾸는 꿈'보다 '함께 꾸는 꿈'이 고단한 인생길 덜 외롭지 않겠는가.

작은 숲길 벤치에 머무르는 동안 딱딱하게 굳어졌던 내 얼굴이 숲 그늘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스르르

풀렸다. 요즘 나도 모르게 비판의 칼날리 곧추서 급기야는 로마의 검투사 같은 논쟁도 불사한다. 해서

지나온 과거의 상처까지 뒤집는 논쟁은 차라리 자학임을 깨친다. 기실 외로운 것은 나였나 보다.

나(우리)처럼 삶이 서툰 사람들은 곁에 꼭 붙어 살아야 한다.

여름이니 맑은 강물에 눈도 씻고 귀도 씻고 입도 씻고 천렵이나 해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