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나의 이야기 : 혈우병과 함께한 성장과 도전

전제헌님

Q1. 혈우병을 처음 알게 된 시기와 당시의 기억을 들려주세요.

그때는 너무 어렸을 때라 부모님의 이야기에 의존하여 당시의 상황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4살이었을 때, 출혈이 심하게 발생하여 지역 병원의 응급실을 가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인 출혈의 원인을 해당 병원에서는 밝혀낼 수 없었고, 결국 저는 서울의 병원으로 옮겨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알 수 없는 출혈의 원인을 알기 위해 재단을 소개받았고, 그렇게 저의 상태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매달 재단을 다니며 약을 수령하고, 관리를 받았던 어렸을 적 기억들이 지금도 재단을 방문할 때마다 새록새록 떠오르곤 합니다.

Q2. 현재 취업준비 중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를 목표로 하고 계신가요?

저의 전공은 정치외교학과였습니다. 전공 특성상 자연스레 국제관계와 관련된 수업을 들을 기회가 많았었는데요. 그 중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낙후된 인프라와 그 국민의 삶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수행하거나 지원하는 사업들인 국제개발협력에 대해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프고 약했던 제가 도움을 받아 현재의 건강한 일상을 살아가듯이,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의 국가를 지원하는 일에 종사한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국제개발협력 사업들을 주관하는 정부기관이나 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현재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Q3. 여행을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어렸을 때 저는 다른 환우 분들과 마찬가지로 출혈에 취약하고, 몸이 허약했던 관계로 외부에서의 활발한 활동은 자연스레 피하고는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로 집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었는데, 그러한 정적인 일상을 보냈던 저의 유년시절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가족들과 떠나던 여행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저희 부모님께서는 다양한 곳으로 저를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여행지에서의 다양한 추억, 낯선 장소에서 느껴지는 새로운 기분, 그리고 일상으로부터의 해방감이 좋은 기억에 남아 성인이 된 지금도 여행을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Q4. 기억에 남는 첫 여행지는 어디였고, 뭐가 매력적이였나요?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떠났던 곳인 프랑스 파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인 것 같습니다. 서양 문학을 즐겨 읽었던 저에게, 예술 및 문화의 중심지로 묘사되었던 파리는 마치 닐 암스트롱이 위대한 한 걸음을 옮기기 전 지구인들이 달에 가졌던 동경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저의 동경과 환상을 지켜주기라도 하듯 파리에서의 여행은 7월의 화창한 날씨와 도시 곳곳에 남아있는 근대의 흔적, 제가 읽어왔던 책들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풍경들로 채워진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여행이었습니다. 열흘 남짓의 시간을 오롯이 파리에만 머무르며 어느 날은 관광객처럼 루브르 박물관을 온종일 돌기도 하고, 다른 날은 여느 파리 사람들처럼 센 강변에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기도 하며 다양하게 도시를 즐겼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Q5. 선교활동은 언제 처음 시작하셨나요? 또 다녀오신 여러 차례의 활동 중 기억에 남는 특별한 경험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어렸을 적에는 어리다는 이유로, 성인이 된 후에는 코로나로 인해 선교활동에 잘 나서지 못하다가 3년 전 처음으로 선교활동에 참여하였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의 청년부는 여름마다 국내의 농촌에 있는 교회로 찾아가 부족한 일손을 돕고, 교회 주변 환경들을 개선하는 선교 및 봉사활동을 나가고 있습니다. 이 활동에 처음 참여했던 때가 기억에 남습니다. 여행지와 다르게 선교 활동지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환경이 좋지 않았습니다. 평소의 쾌적한 생활을 당연하게 여겼던 저는 자기도, 씻기도 불편한 곳에서 습한 무더위와 지내며 부정적인 감정이 많이 들었었습니다. 그런데 활동 중 만난 그 지역의 아이들이 즐겁게 그곳에서 지내고,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모습을 보며, 편한 환경에서 지냄에도 쉽게 불평하는 제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Q6. 혈우병 환우로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배운 점이나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앞선 질문에서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인데요. 선교활동을 하게 되면 자신의 삶에 감사하는 마음이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보통 선교활동은 도심으로부터 떨어져 시설이 많이 낙후된 지역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래서 몸이 아프거나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의료 인프라에 접근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계시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지내고 계시는 분들의 생활을 돕는 활동들을 하다 보면, 나 역시 환우이기는 하지만 정말 편안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음을 체감하며 평소 내가 병으로 갖는 불만이 매우 사소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평소 환우라는 이유로 남들의 도움을 받는 상황에 놓일 때가 많지만, 선교활동에 참여해서는 남을 돕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 뿌듯하고 그만큼 건강해진 제 모습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Q7. 실패나 좌절을 경험했을 때, 어떻게 마음을 다시 세우나요?

많은 분이 아시다시피, 몇 년 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이라는 말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모방한 말들이 우후죽순 나왔었는데, 그중 제가 듣고서 “그래, 이게 진짜 맞는 말이다.” 싶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중요한 것은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마음’ 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냥 하는’ 이라는 말이 제게 와 닿았었습니다. 살면서 포기하게 만드는 실패의 순간들은 결코 한 번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느껴왔기 때문에, 사람이 살아가며 마음이 꺾이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이 실패의 역사 속에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실패나 좌절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자책하기보다는 ‘그냥’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삶의 태도라는 생각이 들어 이 말이 어려운 마음을 지켜내는 좋은 지침이 되어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그냥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Q8. 여행과 선교활동을 통해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제가 즐거움을 느껴서 하는 일이라 이를 통해 갖는 목표는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항상 예방하고 자기관리를 하며 건강한 몸으로 더 다양한 곳을 다니며 세상을 보는 시야가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Q9. 같은 혈우병 환우인 또래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아무래도 저의 또래인 환우 분들은 학업과 취업, 혹은 직장 때문에 바쁜 삶을 보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몸과 마음의 건강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건강이 모든 일에 기반이 되는 것이고, 저와 같은 환우 분들은 더욱 그 기반이 더욱 단단해야 지금의 바쁜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상 속에서 꾸준한 예방과 적당한 운동을 잊지 않기를 권면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건강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저처럼 간간히 여행을 다니시면서 새로 충전하고 환기하면 건강하게 마음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Q10. 앞으로 5년 뒤, 어떤 모습의 자신을 그리고 있나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많은 분에게 큰 사랑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랑은 마치 빚처럼 이자를 더하여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지금은 직장도 없고 여러모로 불안정한 시기이지만 5년 뒤면 30대를 넘어선 나이인 만큼, 안정적인 상황 속에서 좀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11.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가 가진 병이 저의 삶 가운데 큰 약점으로 여기고 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에는 주변에 있는 좋은 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약한 저를 살뜰히 보살펴주셔서 지금까지 건강하게 키워주신 부모님께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나의 아픔을 고백하였을 때 편견이나 차별 없이 어울려 주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함께 청년의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